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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바다

꿈꾸는바다

2일 전

1. 외로움, 꿋꿋함, 그리움, 애틋함 그리고 서로를 향한 마음. 그런 분위기로 뻑뻑한 안개가 나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냄새, 표정, 눈빛, 말없이 전해오는 마음이 주는 분위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증조모, 새비, 할머니, 희자, 그들의 마음에 눈물이 났다. 나도 할머니와 친했는데… 물어볼 걸. 할머니 어릴 때 얘기해줘, 할머니의 엄마 얘기해줘, 하고. 하지만 되돌이킬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안다. 2. 천명관의 소설 '고래'가 떠올랐다. '고래'는 거창한 허풍과 구라다. 그럴싸하고 근사해서, 구라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밝은 밤'도 비슷한 이야기다. 증조모, 할머니, 엄마, 나. 하지만 허풍도 구라도 없다. 거창함도 걷어내고 담담하고 진솔하게 들려준다. 그들의 마음을, 마음의 끈을, 그리움, 애틋함을 차분하게 드러낸다. '고래'를 오래 좋아했었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소설을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있었다. '밝은 밤'이다. ‘밝은 밤’의 시점은 이동한다. 일상에서 과거로 점프한다. 다른 공간으로, 다른 시간으로, 마치 환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두 세계를 이동하는 이야기, 방식이 좋다. 오래 전 이런 방식이 좋았다. 다시 찾고 싶었다. 다시 찾았다. 내가 찾던 바로 그런 방식이었다. 현재와 과거 공간을 오가며 두 이야기가 병행하는 이런 구조가 좋다. 소설의 결말도 좋았다. 행복하고 벅찬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는 결말이 좋았다. 정유정과 달리 파국을 향하지 않는다. 이렇게 따듯한 이야기가 좋다. 3. 최은영의 문장은 천명관처럼 멋스럽지 않다. 정유정처럼 깎아내는 듯한 강박도 없다. 구병모처럼 애써 길게 늘여 자기 방식을 만들어내는 꾸밈도 없다. 그저 말하듯 담덤한 문장, 마치 편집자의 문장처럼 특별한 개성없이 그저 정확한 문장을 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은영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냄새를 만들어낸다. 최은영의 문장은 완벽하지 않다. 군데군데 교정의 채로 거르지 못한 문장도 보인다. 그래도 좋다. 완벽하지 않은 그 빈틈도 좋다. 정유정은 생각해보지 못한 존재의 내면 묘사가 매력적이다. 개, 사이코패스,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아빠, 그런 아빠를 둔 아들, 7살 아이, 보노보. 알 것 같지만, 감정 이입해 그 내면을 알기 힘든 존재들. 최은영은 분위기 묘사에 최고다. 그리움으로 가득차 뻑뻑한 분위기. 이렇게 분위기를 독특하게 묘사하는 다른 작가가 있을까. 분위기만으로도 최은영은 훌륭한 작가다. 나는 기대한다. '밝은 밤'이 최은영 작가의 정점이 아니라고. 최은영은 더 멋진 이야기를 들려 주리라고. 설령 아닐지라도 최은영 작가가 계속 써주는 것만해도 그게 어디냐며 고맙게 읽을 것이다.

밝은 밤

밝은 밤

최은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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