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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바다

꿈꾸는바다

2일 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커다란 쾌감과 희열을 느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널리 알려지지 않는 게 아쉽다. (이미 다들 알고 계시다고? 미안하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그럼 좀 알려주시지) 내가 느낀 희열을 느껴보시면 좋겠다. 이 책 되게 괜찮다. 아니 훌륭하다.    '파이 이야기'는 두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랑이와 태평양을 헤맨 환상적 이야기와 그저 의인화였을 뿐이라는 건조한 사실. 어느 것을 믿든 독자 마음이다. 나는 호랑이 이야기가 더 좋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도 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외계인 왕자를 색출해낸 지구를 지키는 용감한 청년 이야기와 가혹한 삶에서 얻은 조현병과 주마등의 환상. 어느 것을 선택하든 모두 가능한 배치다. 나는 슬픈 환상 쪽을 택했다.    김희선 작가의 '무한의 책' 역시 독자의 선택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조현병 환자의 꿈속 환상. 다른 하나는 과거로 여행해 지구를 구한 용감한 이야기. 어느 쪽을 선택하든 딱 들어맞는 치밀한 배치를 했다. 나는 이런 구조가 좋다. 소설 속에도 이런 표현이 나온다. "보는 이의 심리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로르샤흐 테스트", "글쓴이와 읽는 이는, 활자를 통해 서로 대화하고 있는 거라고."    횡설수설에 가까운 수다, 수다쟁이 30명쯤 모아놓고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대체 독자를 어디로 끌고 가려고 이러나, 어디까지 가지치기 할 셈인가, 하면서 읽다 보면, 아 이래서 가지를 쳤구나, 모두 꼭 필요한 이야기였구나, 이야기는 하나로 모인다. 대체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 머릿속엔 뭐가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가가 왜 그리 오래 참고 늦게 데뷔했을까, 어딘가 숨어 사라질 뻔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다니 고맙다, 김희선 작가는 길게 써야 제맛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휙휙 지나간다.    식상해서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지만, 구태의연해 보일지라도 김희선 작가에게는 써야 할 것 같다. 타고난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수다쟁이도 이런 수다쟁이는 처음 봤다. 횡설수설하는 줄 알았는데, 딱딱 맞아떨어지고 하나하나가 다 재미있다. 단편으로 쪼개도 수십 편은 될 듯한 완성도 높은 이야기 뭉텅이가 가득 차 있다. 미국에서 한국,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종횡무진... 아 이런 식상한 표현으로 김희선 작가를 묘사하는 내 어휘 한계가 아쉽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아니, 잠깐만. 또 얘기가 딴 데로 새고 있잖아. 나는 진짜 이게 문제라니까.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뭐든 두 종류로 나누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 소설에 나오는 표현이다. 나는 두 종류로 나누는 사람에 속하는 편이다. 세상엔 두 종류의 소설이 있다. 개인감정 묘사에 집중하는 문체가 뛰어난 소설과 상상의 끝을 보려는 듯 밀어붙이는 소설. '무한의 책'은 상상을 밀어붙이는 소설 중에서도 단연 뛰어나다. 쾌감을 준다. 게다가 작가의 문체도 좋다. 소위 횡설수설 종횡무진 문체. 게다가 아는 건 어찌나 많은지, 비밀은 작가가 소설에서 내비친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당신들도 위키백과에 들어가봐. 거기 엄청 길게 설명돼 있으니까. 잘만 읽으면 누구나 반앨런대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이야기1 ⊃ 이야기2 ⊃ 이야기3 ⊃ 이야기4 ⊃ 이야기5 ⊃……∞……⊃ 이야기1 아니, 어쩌면 이 도식은 이렇게 그려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이야기1 ⊂ 이야기2 ⊂ 이야기3 ⊂ 이야기4 ⊂ 이야기5 ⊂……∞……⊂ 이야기1" 딱 자기 소설 이야기. 이게 뭔 소리야 하겠지만, 읽어보면 이런 난잡한(?) 서술이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

무한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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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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